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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사랑.

by 파rang 2023. 8. 1.

  글을 자주 쓰고 많이 쓰다 보면 내 글이 너무 진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말하고자 하는 바도, 글의 주제도, 내용도 형식도 다 너무 비슷한가 하는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 없어요. 하지만 어떡하겠어요? 일단 쓰고 보는 거예요. 나는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이니까요. 글을 쓰고 나면 또 내가 조금은 더 괜찮은 인간이 되어있는 것 같으니까요.
 
  오늘은 외할머니를 뵙고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아주 가끔은 밉고 자주 사랑스러우신 조영석 씨는 평생 부산 영도에 살다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큰삼촌이 계시는 충청남도 공주로 이사를 하셨어요. 그래서 이제는 마음먹고, 아빠가 휴가를 내야지만 뵈러 갈 수 있게 됐죠. 엄마는 여느 때처럼 할머니를 뒤로하고는 훌쩍거리시고, 아빠는 당신 또 우나~하면서 휴지를 건네셨죠. 뭐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 이제는 놀라지도 않아요. 뒷자리에서 슬 잠들려고 자리를 잡는데 눈을 의심할 장면을 포착했어요. 엄마도 아니고 아빠가, 엄마에게 손을 쓰윽 건네는 거예요. 그러면 엄마는 아빠 손을 보지도 않고 그냥 잡아요. 아주 자연스럽다는 듯이요. 세상에 우리 엄마아빠도 손을 잡는군요! 매번 우리 앞에서는 과한 애정 표현을 하지 않는 두 분이라 더 신기하게 다가와요. 분명 엄마아빠도 엄마, 아빠가 아닌 민주 씨 동윤 씨였던 적이 있을 텐데 제가 그걸 간과하고 있었던 거죠.

  긴 운전이 지루했던 아빠는 엄마에게 노래를 틀어보라고 하고, 엄마는 그때 그 시절 노래인 대학가요제 메들리를 틀어요. 이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그들만의 리그가. 누가 먼저 노래 제목 맞추나! 사실 대부분의 승리는 아빠가 가져가요. 대결의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아빠가 많이 맞추지만 엄마는 오히려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아빠를 바라봐요. 대학 시절, 노는 데에는 빠지지 않았다는 아빠의 말이 믿어지는 순간이에요. 그 순간, 핸드폰에서 '그대에게'가 흘러나와요. 우리 셋은 하나가 되어 떼창을 해요.

 
숨 가쁘게 살아가는 순간 속에도
우리는 서로 이렇게 아쉬워하는걸
아직 내게 남아 있는 많은 날들을
그대와 둘이서 나누고 싶어요~

  엄마가 가방에서 츄파춥스 두 개를 꺼내요. 그러고는 아빠에게 청포도 맛(알고 보니 레몬 맛이었지만….)을, 엄마는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 크림 맛을 입에 물어요. 사탕을 열심히 먹던 아빠가 한마디 던져요.
"어우 여보 이거 너무 신데???"
"오잉 그래요? 이상하네~ 청포도 맛인데 왜 시지?"
"헐 엄마 그거 레몬맛이야.. 제일 맛있는 거 엄마 먹고 다른 거 아빠 줬네!ㅋㅋㅋㅋ"
"아니~ 아빠는 뭐든 잘 먹으니까~ㅎㅎㅎ"
  아빠는 모녀의 대화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아빠의 삶처럼 시고도 단 사탕을 입에 물고 묵묵하게 운전을 하세요.

  엄마 아빠의 대화가 내가 수혁이와 나누는 대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아요. 나이가 들어도 사랑은 늙지 않나 봐요. 우리의 그 풋풋함은 없지만, 더 깊은 배려가 담겨있는 사랑을 엄마아빠의 대화에서 발견해요.

  내가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사랑은 멈추지 않기 때문이에요. 내가 살아가는 한, 사랑도 계속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사랑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오기 때문이에요. 100가지의 삶이 있다면 100가지의 사랑이 있으니까요. 살아가면서 최대한 많은 사랑을 포착하고 싶어요. 나에게 살아가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에요.

  물을 마시려 잠시 거실에 나가요.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는 엄마의 다리를 만져주고 있는 아빠를 발견해요. 예전의 총기와 예리함은 사라졌지만, 다정함과 여유가 담긴 아빠의 눈빛. 그리고 그런 아빠에게 힘을 쭉 뺀 상태로 다리를 맡긴 채 누워 있는 우리 엄마. 나는 왜 눈물이 고이는 걸까요. 무심한 듯 꾸준한 아빠의 손길에서, 졸린 듯 편안해 보이는 엄마에게서 멈추지 않는 사랑을 포착해요. 내가 어제도 살고,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사는 것처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사랑하는 내가 되고 싶어요. 멈추지 않을 사랑이 나를 흘러 당신들에게 닿기를 바래요. 삶이 멈추지 않는 한, 사랑도 멈추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