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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st

사랑이 밥 먹여주냐

by 파rang 2023. 5. 6.

  왜 사랑은 밥 먹여주지 않을까? 오래전부터 품었던 의문이다. 지금은 안 그런지 모르겠지만 예전의 드라마를 보면 부잣집 남자와, 가난한 여자 그리고 그 둘의 사랑을 반대하는 진주목걸이를 하고 있는 남자의 어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99% 등장하는 대사. "사랑이 밥 먹여주냐?" 사랑으로만은 살 수 없으니 당장 그 가망 없는 연애를 때려치우고 정신 차리라는 의미이다. 어찌 보면 아주 현실적이고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이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 말을 어디선가 들을 때마다 오히려 반발심이 생긴다. 그러는 당신은 얼마나 대단한 삶을 살았냐고. 밥 먹여주는 다른 일을 더 열심히 해서 지금 삶에 만족하냐고 물어보고 싶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때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해 봤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을 그렇게나 오래 생각하고, 좋아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거리고 내 모든 신경은 24시간 그 사람에게 쏠려있었다. 그리고 첫사랑이었던 만큼 서툴렀고 힘들었다. (뭐 지금 연애도 그렇게 능숙하다고는 말 못 하지만.... 이때보다는 잘하지 않을까^^) 이렇게나 강렬했던 나의 첫사랑은 고2 때 시작해서 고3에 끝났다. 그리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과 함께 나의 성적도 곤두박칠을 쳤다. 지금도 가끔 그때 그 사람을 안 만났더라면 내가 더 잘 살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백번 생각해 봐도 아마 난 백번 다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바보 같고 미련한 선택이라고 해도 18살의 김예진은 사랑이라는 게 너무 궁금했고 상상만 하던 그 감정이 나에게 다가오는 걸 뿌리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의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첫연애를 통해 알게 된 사실하나는 나는 사랑에 아주 진심이라는 것. 나는 가벼운 만남, 가벼운 연애가 불가능한 사람이다. 연애만 시작하면 그 사람이 내 세상이 되어버린다. 나의 일상에 그 사람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그냥 세상 전부가 되어버린다. 나는 사랑과 학업을 병행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신기하다. 아니 그러니까 두 가지를 모두 성공적으로 해내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도대체 얼마나 이성적이어야 행복한 연애와 준수한 성적을 모두 챙길 수 있는 걸까? (연애 유튜버 백날 보면 뭐 하나. 적용을 못하는데. 나도 연애에 있어서 쿨한 그런 사람 하고 싶다. 아무래도 이번생에는 글렀다.) 물론 그렇다고 매일매일 연애에만 빠져서 전전긍긍 아무것도 못하는 건 아니다. 이제 울면서 할 일을 한다. 안 운다고는 말 못 하겠다. 예전에는 울면서 아무것도 못했다면 이제는 울면서 해야 할 일을 한다. 삶은 나의 연애사를 다 기다려줄 만큼 낭만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아 버렸다. 

 

  사랑에 굉장히 진심인 나로서는 세상의 모순을 이해할 수 없다. 청춘이면 마음것 사랑하라고 해놓고, 노래도 영화도 드라마도 사랑하라고 외쳐대는데 사랑에 최선을 다하면 또 미련하다고 한다. 적당히 자기 일도 하면서 사랑해야 한다고. 사랑 안 하면 아무도 뭐라 안 하지만 일을 안 하면 뭐라 한다. 이게 뭐람. 왜 사랑은 밥 먹여 주지 않는 것인가. 다들 사랑 없는 세상에 한번 살아보라지. 아주 그냥 팍팍하고 삭막해서 일분일초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 팍팍한 세상을 버티게 해 주는 게 사랑인데 사랑에 대한 대우가 너무 짜다. 어린 시절의 연애를 흔히들 '소꿉장난'이라고 많이 칭하는데 그 소꿉장난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돈은 우리가 생계를 유지하게 해 준다면 사랑은 생계를 유지할 이유를 만들어준다. 언젠가 사랑이 밥 먹여주는 그날까지 일단은 열심히 살아야겠다. 언젠가 내 책에 "여러분 사랑도 밥 먹여줍니다. 제가 그 살아있는 증인입니다. 그러니 열심히 사랑하십시오"라고 쓸 것이다. 그전에 일단 유명해져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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