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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사랑한다 말해도,

by 파rang 2023. 6. 2.

  나는 사랑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 언젠가 너의 집에서 나는 방에서 아이패드로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고, 너는 막 씻고 나온 상태였어. 네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방에 들어와서는, 넷플릭스에 골똘히 집중하고 있는 나를 보며 씩 웃더니 귀엽다는 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어. 나 그때 되게 행복했다? 그냥 그 순간 내가 엄청 사랑받는 기분이었거든. 그 이후로 이 장면이 두고두고 떠올라. 사랑이라고 하면 이 장면이 가장 많이 떠올라.

  사랑은 뭘까? 사랑이란 건 대체 뭘까? 엄청 진부한 질문이지? 그런데 요즘 들어 자꾸 생각하게 돼. 사랑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잖아. 그런데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어. 실체가 없지만 나를 가장 크게 흔들어놔.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도 사랑인데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도 사랑이야. 그래서 나는 사랑이 무섭지만 놓을 수 없어.

  나는 분명 너를 사랑하는데, 너도 나를 사랑하는데. 그건 확실한 사실인데.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한 게 있는 걸까. 사랑하는데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겠어. 내가 조금 더 크면, 지금보다 더 어른이 되면 알게 될까? 우리 엄마아빠는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까? 내가 하는 모든 질문이 답이 없는 질문이란 걸 알아. 어쩌면 모든 연인들이 그 답을 모르는 채로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사랑하면 저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아마 나에게 사랑이란 저런 건가 봐. 그저 바라봐주는 것.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묵묵히 뒤에서, 옆에서 바라봐 주는 것.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네가 거기 있는 것.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맞추고 씩 웃어주는 것.

  나는 오늘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고, 사랑이 뭔지도 잘 몰라. 하지만 너를 사랑해. 아직도가 아니라 여전히.여전히 너를 사랑해.

  사랑한다 말해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어. 사랑한다는 말로만은 전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어. 그럴 때는 너의 눈빛을 떠올려. 여전할 너의 그 눈빛을 온기를 떠올려. 조금 더 담담히 그러나 단단히 사랑하는 내가 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