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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특별한 이름.

by 파rang 2023. 5. 23.

  이름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선우정아'나 '이슬아' 같은 이름들. 둘 다 각각 내가 좋아하는 가수와 작가의 이름이다. 사람 이름이 어떻게 선우정아고 이슬아일 수 있단 말인가. 이름과 그 사람이 너무 잘 어울린다. 이름과 그 사람의 노래가, 이름과 그 사람의 글이 꼭 하나인 것만 같다. 유명인 말고도 내 주변에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시호, 라경, 하늘, 예승, 유영..... 등등 평범하지 않은, 개성 있는 이름들이다. 신기한 게 다들 저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뭐 내가 저들의 삶을 속속들이 다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렇다. (예승은 비교적 평범한 이름일 수 있는데 예승을 길게 풀어보면 예스응이 되고 예스응은 yes, 응 이 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름에 온통 긍정밖에 없다는 말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예승이는 저 이름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주변이 온통 긍정이다)

 

  나는 저렇게 특별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 얼굴을 안 보고 이름만 들어도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게 되는 이름들. 그에 반해 내 이름은 너무 평범하다. 예진. 박예진도 최예진도 아닌 김예진. 세상에나 적어놓고 보니 세상 모든 평범을 다 모아둔 이름 같다. 평범하디 평범한 예진이는 학교에도, 교회에도 어딜 가도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예진이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김예진, 최예진, 박예진이 같은 반이 되어버려서 1년 내내 나는 예진이가 아닌 '김예'로 불려야 했다.

  그런데 이토록 평범한 '김예진'도 특별해지는 순간이 있다. 내 이름이 특별해질 때는 바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다.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김예진!이라고 부르던, 다정하고 따듯하게 예진아, 라고 부르던, 나는 내 이름이 불리는 게 좋다. 사실 이름은 부르라고 있는 거 아닌가. 이름의 가장 큰 소명은 누군가에게 불리는 것이다. 그게 이름의 유일한 목적이고 필요다. 친구든, 부모님이든, 선배든, 연인이든 누구든 내 이름을 부를 때는 그 이름 속에 나를 향한 애정이 담겨있다. 야! 가 아니라 예진아! 라고 나를 불러주면 내가 나로 인정받는 기분이다. 너에게 내가 기억되어 있고, 나는 김예진이고, 너에게 김예진이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어디에나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이름이 불리면 내가 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아서 기쁘다. 참 웃긴 게 이름은 나의 것이지만, 나 자신을 대표하는 아주 중요한 것이지만 나는 내 이름을 부를 일이 거의 없다. 이름은 누군가에게 불릴 때만 빛을 발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가 있어야만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네가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아무리 잘났고, 대단한 존재여도 아무도 나를 불러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그래서 되도록 많이 "예진아"라고 불리고 싶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이름을 부르고 싶다.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며 내가 너를 기억하고 있다고, 너는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오늘도 나는 내 이름을 불러준 사람들 덕분에 '김예진'으로 살 수 있었다. 내일도 나의 이름을 불러줄 친구들을 떠올린다. 또 내가 부를 이름들을 떠올린다. 어떤 이름도,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특별한 이름들이다.

 

 

(*혹시 이 글에서 자기 이름을 발견했다면....미리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당신들의 이름 너무 특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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