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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

by 파rang 2023. 6. 11.

  문상훈. 아니 문당훈. 내가 푹 빠져있는 사람이다. 요즘 밥 먹을 때마다 빠더너스(문상훈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이름이다. 뜻은…. 나도 잘 모른다.)채널의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라는 영상을 본다. 가수, 배우, 감독 등 유명인을 모시고 배달 음식을 시킨 뒤 그 음식이 오기 전까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는 콘텐츠이다. 오당기가 업로드될 때마다 꼬박꼬박 다 챙겨봐서 안 본 편이 없지만 봐도 봐도 재밌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또 그 속에 담겨있는 자신들만의 철학이 너무 흥미롭다.

  특히 나는 오당기를 보면서 다른 누구도 아닌 '문상훈'에게 빠져버렸다. 문상훈은 웃기지만 우습지 않은 사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아는 사람. 또 왜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아는 사람.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에 약한지 아는 사람. 하지만 초라하지 않은 사람. 외로움을 잘 타지만 그 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 심지어 어떻게 하면 더 잘 외로울 수 있는지 아는 사람. 그 외로움 속에서 배우는 사람. 성장하는 사람. 이렇게 적고 보니 내가 문상훈이라는 사람을 너무 칭송한 것 같지만 정말 그렇다. 오당기 한편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문상훈을 존경한다거나, 닮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런 느낌과는 다르다. 나는 그냥 문상훈이 좋다. 문상훈이 잘 됐으면 좋겠고, 그 사람의 실없고 가끔은 바보 같은 웃음이 좋다. 이런 느낌은 아마 문상훈의 가식 없음, 솔직함에서 나오는 것 같다. 문상훈은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나오면 좋아한다는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부끄러워하고, 멋쩍어하며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한다. 또 자신의 초라한 부분, 어쩌면 찌질해 보이는 부분까지도. 그런데 그게 웃긴 동시에 너무 공감이 간다. 왜냐면 나도 그런 사람이니까. 나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

  '목도리'는 물리적으로 따뜻함을 선물할 수 있는 물건이라고 한다. 그래서 문상훈은 겨울에 목도리를 선물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또 양말 중에 L, R이 굳이 적혀있는 양말이 있는데 자기는 그 왼쪽, 오른쪽을 굳이 굳이 맞춰서 신는다고. 그럼, 아무도 몰라주지만, 그냥 기분이 좋다고. 자신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부럽다. 혼자서도 행복해지는 방법을 아는 사람. 자신만의 규칙이 있는 사람. 그 규칙이 나를 옥죄는 게 아니라, 내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사람. 혼자서 밤 산책을 즐기고, 술 한잔을 해도 그 술에 어울리는 안주를 고민하는 사람. 당당하게 자신은 찌질하다고 말하는 사람. 사랑을 받는 역할보다는 사랑을 주는 역할을 더 많이 했다고 말하는 사람. 또 마냥 진지한 게 아니라 실없는 소리를 하고, 그 말에 자기 자신이 웃는 모습을 보다 보면 어느새 나도 같이 웃고 있다. 어쩜 그렇게 사람이 무해할 수 있을까.

 

  문상훈을 보면서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없어도,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아는 것. 혼자서도 긴긴밤을 보내는 법을 알아가는 것. 물론 여전히 어른이 되어도 혼자서 맞이하는 밤은 외롭겠지만, 그 외로움을 즐기는 법을 터득하는 것.

  나는 글을 쓰면 행복해진다. 글 속에서 나를 표현하는 게 좋다. 나는 자기소개에 최적화되어 있는 사람인가보다. 예전에는 자기소개가 참 싫었는데 요즘은 누가 나에게 시켰으면 좋겠다. 그러면 자신 있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요, 글 쓰는 사람입니다. 저는 제 글이 좋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나 말고도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세상이 나를 알아봐 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씁니다. 그리고 저는 사랑을 좋아합니다. 사랑은 뭐든 가능하게 하거든요. 나를 일으키는 것도, 넘어지게 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그리고 또 뇌 빼고 나누는 대화를 좋아합니다. 또 햇살 좋은 날에 버스 안에서 멍때리는 것도 좋아하고요, 여름에 비 오는 날 콩국수 먹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또....." 아 이런…. 좋아하는 게 너무 많다. 빨리는 못 죽겠다.

  나도 꽤나 좋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나는 어른이 돼서도 친구들과 이상한 소리를 하며 웃고 싶고, 슬픈 영화를 보면 입을 삐죽거리며 울고 싶고, 일부러 새벽에 감상에 젖는 음악을 들으며 일기를 쓰고 싶다. 그리고 그때도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계속계속 알아가고 싶다. 문상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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