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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눈이 올까요,

by 파rang 2022. 11. 30.

  오늘 아주 잠시 서울에 눈이 내렸다고 한다. 눈인지 우박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하얗고 작은 게 하늘에서 내렸다고 한다. 그게 뭐라고, 눈이 뭐라고 다들 눈만 오면 난리다. 호들갑을 떨고, 찍어서 SNS에 올리고, 친구에게 알리고,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기뻐하고.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란 탓에 눈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서 눈이라는 존재는 나에게 항상 큰 이벤트 같다. 고3 수능을 끝내고 맞이한 겨울방학, 나는 공주의 사촌집으로 놀러 갔다. 한 2주 정도 있었는데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늘에서 펑펑 내리는 눈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아침에 눈뜰 때마다 혹시나 밤새 눈이 내렸을까 봐 베란다로 달려가서 바깥 풍경을 확인했는데 하루는 바깥세상이 눈으로 가득 뒤덮여있었다. 건물 위에도, 차 들위에도, 도로에도 나무에도 모두 모두 하얀 눈이 덮고 있었다. 자이언티의 눈을 들으며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구경하던 그 겨울방학을 절대 잊지 못한다. 집안은 온기가 가득하고, 집 밖 세상은 하얀 눈으로 가득했던 그날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나는 눈이 왜 좋을까. 왜 눈이 오면 설렐까. 기쁠까. 눈은 아주아주 평범한 하루를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하루로 만들어준다. 눈이 온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에게는 많은 핑계거리가 생긴다. 초등학교 때 한 번 눈이 꽤 많이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선생님께서 수업을 멈추시고 모두 운동장으로 나가서 놀게 해 주셨다. 눈이 녹아서 질퍽해진 바닥을 누비고 다니느라 운동화가 다 더러워졌지만 운동화는 안중에도 없을 만큼, 발의 찝찝함은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행복했다. 또 눈이 오면, 특히 첫눈이 오면 우리는 첫눈이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삼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 수 있다. 눈이 온다고, 첫눈이라고. 너와 함께 첫눈을 보고 싶다고. 그러니 만나자고. 보자고. 함께, 같이, 나란히 서서 첫눈을 맞이하자고.

 

  이렇듯 눈이 오면 모든걸 멈추고 당장 뛰쳐나갈 용기가 생긴다.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일들을 용기 내어해 볼 용기가 생긴다. 사랑하는 사람을 갑작스레 만나러 가는 일, 거리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 창밖의 눈을 보며 멍 때리는 일, 하얀 눈을 찍어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하는 일, 그 친구에게 눈과 함께 안부와 설렘을 전하는 일, 조그마한 다정을 전하는 일. 

 

  내가 혼자 사는 세상에 눈이 내렸다면 나는 이만큼 설레고 행복하지 않았을것 같다. 눈이 온다는 기쁨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눈을 좋아하는 거 아닐까. 눈이 오면, 눈이 내리면 멀리 있는 엄마 아빠에게도 사랑하는 너에게도 다정한 친구들에게도 이 소식을 얼른 전하고 싶어질 것이다. 눈이 온다고. 우리 얼른 만나자고. 만나서 마음 것 웃고 떠들며 온기를 나누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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