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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함께라면 어떤 것도 상관없나요

by 파rang 2023. 6. 26.

  여름이야. 날씨가 습하고, 발은 쩍쩍 달라붙고, 가만히 있어도 몸에서 열이 오르는 여름이 왔어. 당신들에게 여름이란 뭐야? 여름이 어떤 의미야? 누군가에게는 수박 주스를 먹기 좋은 계절, 누군가에게는 그저 뜨겁고 강렬한 기억, 누군가에게는 밤 산책하기 좋은 날씨이기도 하겠다. 나는 여름 하면 초록색, 푸릇푸릇함, 싱그러움이 제일 먼저 떠올라. 초록색 공원에서 땀을 뚝뚝 흘리며 걸어가는 사람들, 선풍기 바람을 쐬며 콩국수를 먹는 김태리, 나른한 낮잠 같은 것들. 나에게는 이런 게 여름이야.

  사실 나는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여름은 너무 강렬하고 그 강렬함이 사람을 너무 나태하게 만들거든. 뭐 물론 그 강렬함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핑계가 되기도 하지만 말이야. 덥고, 더우면 땀나고, 땀나면 찝찝하고 그럼 아무것도 하기 싫어. 조그만 거 하나에도 쉽게 짜증이 나고 모난 말이 나오는 계절이야. 그런데 좋아하는 계절을 누군가가 나에게 물어보면 나는 여름, 겨울이라고 답해. 참 이상하지? 이토록 여름의 단점을 크게 느끼면서 여름을 좋아한다니. 어쩌면 나는 여름 자체를 좋아하기보다는 여름이 주는 이미지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어. 1년 중 초록색이 가장 짙은 계절이고, 여름휴가가 있고, 더위가 주는 그 나른함과 비 온 뒤에 풍기는 땅 냄새. 나는 더운 건 싫지만 저런 것들은 좋거든. 여름의 더위는 싫은데 그 더위 덕에 누리는 많은 것들은 좋아해. 그러면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 걸까 싫어하는 걸까?

   여름밤은 저런 질문들을 떠올리기에도 좋은 계절이지. 쓸모없지만 즐거운 질문들. 아무도 물어보지 않고 궁금해하지 않지만 답을 찾고 싶은 질문들. 그러다 나의 저런 질문들에 답을 해주는 친구를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밤이 되는 거야. 여름의 낮은 뜨거우니까 여름의 밤은 상대적으로 마음에 여유가 생기거든. 밤새 떠들다가 어두웠던 하늘이 점차 밝아지고, 밝아진 하늘을 눈치챌 때쯤 우리는 잠에 들겠지. 아,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름방학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해가 뜨고 잠에 드는 건 방학에만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다음날 아무 일정도 없는 방학에 하면 더 즐겁고 짜릿한 게 밤새우기니까.

  나는 사랑에 빠지기 좋은 계절이 겨울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여름에는 핑곗거리가 많잖아? 우리 시원하고 달달한 콩국수 먹으러 갈까? 아니면 밖은 더우니까 에어컨 빵빵한 영화관에서 영화 볼까? 아니면 진부하지만 언제나 신나는 바다 보러 갈까? 그것도 싫으면 각자 방에서 밤새 전화할까? 장마철이니까 어디 나가기 번거롭잖아. 하지만 방학이니 심심할 테고. 같이 온종일 전화하면서 시시콜콜한 농담이나 나누자. 그럼 하루가 금방 갈 거야라고 말하면서.


   여름은 가장 쉽게 짜증 나지만, 가장 쉽게 행복해지는 계절이기도 해. 너무너무 더워서 내 모든 신경이 뜨거움에 가 있을 때면, 시원한 공간에 들어가기만 해도 행복해지거든.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이번 여름이 함께라면 어떤 것도 상관없는, 그런 여름이 되었으면 좋겠어. 다른 건 다 내팽개치고, 그저 우리가 함께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어. 실은 함께라는게 가장 어렵고도 엄청난 일임을 알게되는 여름이 되었으면 좋겠어. 여름의 한복판에서, 더위를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여름이야. 초록이 무성하고, 흙냄새를 자주 맡을 수 있고, 이유 없는 나른함에도 핑계를 댈 수 있는. 저기 아지랑이를 배경으로, 너와 춤추기 가장 좋은 계절인 여름이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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