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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22살의 예진만 할 수 있는 이야기.

by 파rang 2023. 7. 5.

  방금 이슬아 작가님의 신간을 읽었다. 아, 다 읽은 건 아니고 한편. 프롤로그도 읽었으니 두 편이라고 해야 하려나. 사실 지금 이 자리에서 책을 다 읽어버릴 수도 있지만 일부러 한편만 읽고 책장을 덮었다. 이슬아 작가님의 이야기를 아껴두고 싶어서. 매일 밤 이 시간을 기다리고 싶어서. 밤에 읽을 책이 있다는 건 정말 근사한 일이다. 좋은 책은 매일을 살아갈 이유가 된다. 며칠 전에 다 읽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처럼. 책을 읽고 싶은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거나, 독서에 취미를 붙이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 책도 매일 하루 한 편씩 아끼고 아껴 읽었다.

  어쨌든, 다시 이슬아 작가님으로 돌아와서 나는 작가님의 문장을 읽을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한다. 너무너무 좋아서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 처음 읽고는 그저 감탄만 하고, 두 번째 읽을 때는 눈에 새기고, 세 번째 읽을 때는 마음에 새긴다. 그러고 나면 궁금해진다. 어떤 삶을 살면 저런 문장을 쓸 수 있는 걸까. 생이란 건 모두에게 주어지는 건데 어쩜 자신의 생을 저렇게 멋있고 기갈나는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작가님의 글에 비하면 내 글은 정말 그저 22살 대학생의 일기와 다를 바가 없다. 몇 년의 삶을 더 살고, 몇 번의 파도를 더 마주하면 저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내 글 몇 편을 읽은 한 어른은 나에게 "글은 참 잘 쓰는데 아직 경험이 많이 부족하네. 조금 더 크고, 많은 경험이 필요하겠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뒤로 한동안은 글을 쓰지 못했다. 내 글이 그저 아직 철들지 않은 사람의 푸념으로 보일까 봐. 아직 세상의 무서움을 모르는 밝고 희망적인 사람의 노래로 보일까 봐. 내 글을 읽고 어떤 걸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던 그건 읽는 이들의 몫이지만, 내 글을 읽고 남는 생각이 '아직 어린애네.'라면 그건 정말 싫을 것 같았다.

  그 이후로도 나는 많은 글을 멈추지 않고 썼지만, 저 말은 항상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었다. 왠지 더 멋있고 깊은 내용을 써야 할 것 같고 더 많은 아픔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난 뒤에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기분. 그런데 오늘 읽은 슬아 작가님의 프롤로그에 이런 내용이 있다. 작가님이 강연에서 만난 한 노인분이 질의응답 시간에 작가님께 질문을 던진다.

 ".....작가님이 결혼을 할까? 아이를 낳을까? 엄마가 될까? 그런 게 너무 궁금해요, 나는."
나는 장난스레 여쭤본다.

"제가 어떻게 하시면 좋으시겠어요?"
할머니는 설레는 목소리도 대답한다.
 "작가님이 꼭 결혼하면 좋겠어요. 애도 낳고요. 그럼 또 얼마나 삶이 달라지겠어요? 그럼 또 얼마나 이야기가 생겨나겠 어요? 나는요. 계속 달라지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듣고 싶어요."

  그럼 또 얼마나 삶이 달라지겠어요? 그럼 또 얼마나 이야기가 생겨나겠어요? 그렇다. 삶은 달라지고, 이야기는 계속해서 생겨난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몇 년의 삶을 더 산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몇 번의 파도를 더 마주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다 같은 예진이지만 다 다른 예진이다. 지금 내가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몇 년 뒤의 예진이는 들려주지 못하는 이야기이다. 22살의 예진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지금 내 글이 조금 유치하다고 해도, 누군가에게는 코웃음 칠 이야기라고 해도, 이 이야기는 지금이 아니면 쓸 수가 없다. 지금 내 삶은 먼 미래의 예진이는 다시는 살아보지 못할 삶이다. 미래는 끝없이 상상해 볼 수 있어도, 과거는 다시 살아볼 수 없다. 지나간 삶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얼마나 값진 이야기인가. 훗날 내가 아무리 성장하고, 멋있는 사람이 된다고 해도 그때의 나는 22살 김예진의 문장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이미 지나간 이야기니까. 내가 아무리 따라 하고 흉내 낸다고 해도 그건 말 그대로 흉내일 뿐이다.

  내가 살아온 삶을 글로 쓰고, 그 삶에 내가 느낀 것과 깨달음과 나의 감정을 더하면 그건 이야기가 된다. 삶이 이야기되는 순간은 내가 그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글이 좋다. 내 삶이 글 속에서 이야기로 변해가는 과정이 즐겁다. 세상에서의 내 삶은 평범하디 평범하지만 글 속에서 내 삶은 하나뿐인 이야기가 된다. 똑같은 경험을 할 수는 있어도, 똑같은 이야기가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살아낼 테고, 그 시간 속에서 더 많은 파도와 폭풍을 견뎌낼 테다. 물론 그만큼 많은 기쁨도 만끽할 거고. 내 삶이 쌓이는 만큼 내 이야기도 쌓이겠지. 30살의 예진, 40살의 예진은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30살의 예진은 22살의 예진을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생을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아니 더 열심히 만끽해야겠다. 22살의 감정을, 22살의 생을, 22살의 고뇌를, 22살의 기쁨을, 22살의 고통을, 22살의 사랑을. 이건 지금의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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