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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불꽃은 하늘 보기나 걷기일지도 몰라, 나 잘 걷잖아 엄마는 요즘 피아노를 친다. 그럴듯한 곡 하나 연주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피아노를 친다. 핸드폰에 '심플리 피아노'라는 앱을 깔아서 하루에 30분 정도 뚱당 거리신다. 방에서 엄마의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자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은 그렇게 화려할 수가 없는데 막상 엄마가 연주하는 음은 미레도레 미미미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엄마는 눈가의 미간을 찌푸리고 한껏 집중한 모습으로 피아노를 치신다. 이렇게 30분 정도 치고 나면 소화도 잘되고 기분도 좋다면서 엄청나게 신나 하고 뿌듯해하신다. 나는 피아노를 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웃고,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머쓱하다는 듯이 웃는다. 아빠는 낚시에 푹 빠지셨다. 회사 일로 몇 년간 힘들어하셨던 아빠는 그 한을 낚시에 다 푸시는.. 2023. 9. 16.
산책. 산책하는 걸 좋아해? 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묻고 싶어지는 계절이 왔어. 여름은 강렬한 뜨거움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면 가을은 시원한 바람이 마음에도 여유를 불러주잖아. 바람은 적당히 시원하고, 바람이 불러온 여유는 우리의 발걸음도 느리게 만드는 날씨. 이런 날씨에 산책을 안 나가고 배길 수 있겠어? 날씨가 주는 선물을 즐겨야지. 계절은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물이거든. 나는 주로 저녁에 산책하는 걸 좋아해. 저녁을 먹고 밀려오는 졸음을 뒤로하고, 양말을 신고 밖으로 나서면 나를 맞이하는 시원한 공기. 나가자마자 처음 마시는 그 공기가 너무 상쾌해서 산책하러 나가지 않을 수가 없어. 또 특히 밤은 어두우니 내 모습이 잘 보이지 않잖아? 내가 모자를 썼든, 내 옷이 조금 우스꽝스럽.. 2023. 9. 11.
환한 미소로 받는 환영이란. 저 멀리서 네가 걸어온다. 언제나처럼 짓궂은 웃음과 반가워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우리는 안 본 지 몇 년은 된 친구처럼 서로를 발견하자마자 냅다 뛰어가 서로를 와락 끌어안고는 "야아아아 보고 싶었어!"라고 외치며 발을 동동 굴리며, 서로를 보고 씩 웃으며 오늘 하루를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하루로 보내자는 신호를 주고받는다. 이 이야기는 나를 가장 환영해 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내가 나의 빛남을 몰랐을 때, 나를 도무지 사랑하지 못해 힘들었을 때 빛나는 눈빛을 하고 한결같이 나를 맞이해 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의 역사는 고등학교 2학년 때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나는 숏컷을 막 벗어난 동글동글한 여자애였고 너는 길고 큰 친구였다. (키도 목소리도 큰 너.... 미안해. 첫인상이 왜 이렇지..... 2023. 9. 10.
올리브색 원피스 늦은 밤, 올리브에게서 전화가 왔다. 샤워를 하고 돌아와 핸드폰을 확인하니 초록 개구리 페퍼 프로필이 부재중 전화로 떡하니 떠 있다. "여보시오~무슨 일이여?" 나는 친구들과 대화할 때는 주로 사투리를 사용한다. 경상도 사투리인지 충청도 사투리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말투. 평소보다 더 과장해서 쓰는 편이다. 그 사투리에 우리의 진지함이 조금이라도 가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는다. "응. 예진! 나 갑자기 할 말이 생겨서 전화했어. 나 오늘 내 친한 친구들..... 을 만나서 얘기를 했는데, 아 너도 알지?" "아아 알지알지. 나도 한 번 본 적 있을걸?" "있잖아, 만약에 내가 죽어서 장례식을 연다면 나는 슬퍼하는 장례식 말고 즐거운 파티를 열어줘." 다른 친구였다면 이게 한밤중에 무슨 소.. 2023.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