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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백 마디 말보다

by 파rang 2023. 7. 13.

  연애를 하면 "사랑해"라는 말을 참 많이 해. 솔직히 엄마아빠한테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지 오래된 것 같은데 너와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매일매일 빼놓지 않고 했어. 오늘도 그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날이었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귀에는 보다 원활한 통화연결을 위해 에어팟을 끼고는 너에게 전화를 걸어. 그런데 유독 그런 날 있잖아. 너의 사랑이 안 보이는 날. 원래도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유독 더 보이지 않는 날이 있어. 그런 날이면 나는 너에게 투정을 부리지. 너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을 표정을 짓고, 최대한 입을 쭉 빼고, 혀는 짧아진 상태로. 별거 아닌 거에 꼬투리를 잡고, 시비를 걸면서 말이야.

"예진이는 나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 같아. 항상 한 달에 한 번씩 나한테 물어봐. 나 사랑해? 내가 왜 좋아? 이렇게."
"궁금한 걸 어떡해? 사랑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잖아."
그럼 너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해.
"당연한거지이이이~ 당연한 걸 자꾸 물어보니까 그러는 거야."
"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 당연할수록 매일매일 말해줘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아? 나는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고 생각해. 우리가 만난 것도, 이렇게 연애하는 것도, 서로를 사랑하는 것도. 100일이 되고, 1년이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가 익숙해지고 지루해질 수도 있잖아. 나는 그게 좀 무섭거든. 서로를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을까 봐. 그래서 자꾸 물어보는 거야.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고. 아니 확인받으려고. 네가 나를 아직 사랑하는지. 여전히 나와의 대화가 즐거운지. 너도 나처럼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기다리는지. 내가 물어볼 때마다 너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해.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물어보냐고. 내가 건네는 물음들이 너무나도 당연해서 당황스럽다는 걸 과장하면서. 그럼 나는 그제야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그래? 알겠어!"라고 짧고 명쾌한 답을 하지.

 

  사실 나는 네 답이 언제나 같을 거라는 걸 알아. 내 질문이 하나 마나 한 질문인 걸 알아. 그래도 물어보는 건 네 반응이 나를 안심시키거든. 장난기 가득 섞인 목소리로, 조금은 답답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 말투가 좋아. 여전한 너를 보는 게 좋아. 그래서 하나 마나 한 질문을 자꾸 하는 걸지도 몰라.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나는 그 변화를 따라가기에는 너무 느리고. 변하는 것 중에서 변하지 않는 걸 찾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르지.


  네가 오늘 그랬지. 너는 네 마음에 확신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나는 너를 끝까지 사랑할 확신이 있는데 너는 나를 사랑할 확신이 없어서 자꾸 물어보는 거라고. 정말 그럴까. 내 마음에 확신이 없어서 자꾸만 너에게 물어보는 걸까.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내 믿음은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말은 아니었는데. 어쨌든, 우리는 이 주제로 토의하기로 했어. 다음 주면 네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서로의 얼굴을 보고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사랑을 자꾸 물어보는 나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너와 눈을 맞추고 진지하지만 진지하지 않은 대화를 나눌 우리를 상상해. 말이 많은 우리는 서로 자기 얘기를 하려다가 말이 꼬이고, 눈을 살짝 흘겼다가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가겠지. 그러다 지친 나는 그냥 너에게 안아달라고 칭얼거릴 거고, 너는 그런 내 말을 듣지 못하고 말을 이어 나가다가 결국 토라진 나를 발견할 거야. 그럼 너는 미안하다는 듯이 웃으며 나를 안아주겠지.

  아, 내가 너에게 자꾸만 사랑하냐고 물어보는 건 안아달라는 뜻이었나 봐. 너의 품이 그립다는 뜻이었어.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니 내가 온기를 느낄 수 있게 안아달라는 뜻이었던 거야.

  앞으로 내가 너에게 사랑에 대해 물을 때마다 너는 그냥 꼭 안아주면 돼. 날 사랑하는 이유를 백 가지 말하는 것보다 한 번의 포옹이 더 효과적일 거야. 그러면 나는 잔말 말고 그냥 꼭 안겨 있을게. 오래도록 그러고 있을게. 그러고 나면 또 한동안은 너에게 심술궂은 질문을 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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