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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멋있고 이상하고 웃겨서 아름다운 사람에게.

by 파rang 2023. 8. 8.

  나의 멋있고 이상하고 웃기고 아름다운 선배에게.

  선배, 사실 저는 아주 게으르고 끈기도 없는 사람이에요. 이런 저라도 괜찮으신가요? 라고 하루 종일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하루 종일이고 반나절 정도는 고민한 것 같다. 선배랑은 올해 학생회를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학과 선배는 이미 유니콘 같은 존재가 된 지 오래였기에 나에게 아는 선배가 생겼다는 건 참 든든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는 선배가 너무 멋있고 웃기기까지 한다면? 게다가 외면도 내면도 예쁜 사람이라면? 화룡점정으로 이상하기까지 하다면? 아아 나는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나는 멋있지만 이상한 사람에게 약하기 때문이다.

  이런 선배에게 저런 솔직한 고백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호기롭게 시작한 경제스터디 때문이다. 선배가 하는 경제 스터디는 선배 같은 멋있고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같았다. 그 경제스터디를 시작하면 나도 선배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다들 그런 거 있지 않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입은 옷을 나도 입고 싶고, 그 사람이 했다는 운동을 나도 하고 싶은 마음. 그러면 그 사람처럼 된 것 같은 마음.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다가가기에 경제는 나에게 너무 먼 것이다. 자꾸만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경제.... 결국 경제스터디를 나가야겠다!라고 마음먹었으나 나와 먼 경제가 주는 어색함보다 나와 가까운 선배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나는 선배에게 잘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나를 좋아해 주는 선배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아지는가. 그 사람 또한 나를 좋아라 해주면 나는 더 작아지고 만다. 나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면 더 그렇다.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내 얼굴의 홍조 때문이라면 나는 하루 종일이고 선배 앞에서 볼이 발그스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아 나는 결국 또 말하지 못하고 만다.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들키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까지나 선배에게 착실하고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의 모든 초라함과 부족함을 들켜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내보이고서 이런 나라도 괜찮겠냐고, 나는 여전히 선배의 '예진'일 수 있냐고 물어보고 싶다. 이건 또 무슨 이상한 마음일까.

  가장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은 동시에 나의 부족함을 들키고 싶은 마음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당신들이 나를 언제까지나 사랑했으면 좋겠으므로 나는 당신들 앞에서 언제나 완벽하고 싶고, 당신들이 나를 사랑하기에 나는 나의 못난 부분을 보여주고 싶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인간은 약해지니까. 때로는 나의 약함을 드러내면서 우리는 가까워지기도 하니까.


  언젠가 내가 스터디를 나간다는 소리가 들려도 선배가 부디 실망하지 않기를. 나는 선배에게 비싸고 맛있는 밥을 얻어먹기 전에는 선배와 멀어질 수 없으니 일단 나와 밥을 먹고 난 후에 나에게 실망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 글은 내가 사랑하는 모든 멋있고 웃기고 이상해서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나의 진심 어린 세레나데이기도 하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기를. 내가 당신들에게 어딘가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당신들을 아주 많이 믿고 사랑한다는 뜻임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당신들이 언젠가 나에게 자신의 약한 모습을 내비친다면 나는 아주 기쁠 것이다. 나에게는 그 약함들이 나를 아주 사랑하고 믿는다는 소리로 들릴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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