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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슬픔 아는 빛

by 파rang 2023. 9. 1.

   슬픈 건 참 싫지. 내가 슬픈 것도, 슬퍼하는 누군가를 지켜보는 것도 참 싫은 일이야. 사전에 슬픔의 뜻은 '슬픈 마음이나 느낌, 정신적 고통이 지속되는 일'이라고 나와 있더라고. 슬픔의 뜻이 슬픈 마음이나 느낌이라니? 사과 맛은 사과 맛. 딘딘은 딘딘이랑 다를 바가 뭐가 있어? 똑같은 동어 반복이잖아. 그만큼 슬픔이라는 감정을 정의하기 힘든 건가 싶기도 했어. 왜 생각해 보면 결국 분노, 증오, 아픔, 비애, 고통의 끝에는 결국 슬픔이 오잖아. 억울해도 눈물이 흐르고 아파도 눈물이 흐르고 화가 나도 눈물이 흐르고 슬퍼도 눈물이 흐르듯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 뒤에는 슬픔이 따라오지. 나를 갉아먹는 슬픔. 나를 잠식시키는 슬픔. 도저히 달갑지 않은 슬픔.

 

  나는 슬픔에 빠진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앉아서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 나를 상상해 봐. 얼마나 한심하니? 눈은 잔뜩 부어서는 코가 막혀 숨도 제대로 안 쉬어지고. 울고 나면 머리도 무거워져. 나는 언제나 너희들 앞에서 씩씩한 사람이고 싶은데, 웃긴 사람이고 싶은데 슬픈 나는 그럴 수 없어. 너희들을 웃길 수도,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 수도 없어. 자꾸만 슬퍼하다가 이대로 슬픈 사람이 되어버릴까 무서워져. 그렇게 자꾸만 슬퍼하다 내 곁의 사람들이 나를 떠나면 어쩌나 두려워지기도 해. 그래서 나는 슬픈 상황을 최대한 기피하지. 슬퍼봤자 내게 좋을 게 없으니까. 슬픔은 언제나 나를 가라앉히기만 하니까.

  하지만, 하지만 인생은 내가 기쁘게만 존재하게 내버려 두지 않지. 때때로 나를 슬프게 만들고, 화나게 만들고, 아프게 만들어. 그래서 또 주저앉게 만들어.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슬픔일 때도 있고, 바라보기도 싫을 만큼 큰 슬픔일 때도 있어. 하지만 슬픔은 참 너무하지. 외면할 수가 없어. 아프니까. 슬픔을 느낄 때면 마음이 아파오니까. 내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할 때도 있으니까. 피할 수 없는 슬픔이 내게 몰려올 때 나는 그저 슬픔을 오롯이 느낄 수밖에 없지.

  그런데 슬픔을 겪은 뒤에도 웃는 사람들이 있어. 나를 잠식하고, 끌어내리고, 망가지게 만드는 슬픔을 지나온 뒤에도 웃는 사람들이 있어. 그 사람들의 웃음은 더 밝아. 더 빛나. 슬픔을 아는 사람들의 기쁨은 그 깊이만큼 더 깊게 기쁘지. 나는 그런 기쁨을 본 적 있어. 눈물이 이슬이 된 기쁨.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기쁨. 그런 기쁨은 단순히 즐거운 감정만 전달하는 게 아니야. 그런 기쁨을 보면 용기를 느껴. 슬픔을 뒤로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 아니 그보다 먼저 슬퍼질 용기. 슬픔을 아는 사람들은 내 옆에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줄 수 있어. 그리고 진정으로 응원할 수 있어. 이건 그들만이 할 수 있는 거야.

 

  나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슬픔을 겪은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해. 그 행복은 어떤 행복일까. 나는 감히 상상도 못 할 행복이겠지. '슬픔 아는 빛'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어? 아주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가사에서 발견한 단어야. 슬픔을 등에 지고 있는 빛. 슬픔 위에 쌓이는 빛. 슬픔 아는 빛. 가장 빛나는 빛. 슬픔은 빛을 가리는 게 아니었어. 오히려 슬픔이 쌓여 더 밝은 빛을 만들어 내지. 적어도 내가 아는 슬픔은 그래. 슬프고 깊어지는 삶이 좋은 건지, 깊어지지 못해도 슬프지 않은 삶이 좋은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확실한 건 슬픔은 사람을 깊어지게 만든다는 것. 그뿐이야. 하지만 나는 그냥 빛보단 슬픔 아는 빛이 더 좋으니까. 슬픔을 아는 사람의 기쁨이 얼마나 깊고도 단단한지 알았으니까. 우리에게 언젠가 슬퍼지는 날이 오고야 만다면, 슬픔을 떠나보낸 후에 더 밝은 미소로 화답하는 우리가 되자. 슬픔 아는 빛을 풍기는 나의 친구들에게 이 글을 바치고 싶어.

슬픔은 손 흔들며 

오는 건지 가는 건지

저 어디쯤에 서 있을 텐데

이봐, 젊은 친구야

잃어버린 것들은 잃어버린 그 자리에

가끔 뒤 돌아보면은

슬픔 아는 빛으로 피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