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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끝내 사랑하게 되는 것.

by 파rang 2023. 8. 4.

  오늘은 로라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 보려 해. 로라는 큰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로 '과잉 사지'라는 증상을 겪게 돼. 과잉 사지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신체의 어떤 부분에 대해 고통을 느끼는 건데, 로라의 경우에는 세 번째 팔을 감각하고, 그 부분에 통증을 느껴. 사실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하지만 로라 자신은 자꾸만 신체와 정신의 불일치를 느끼지. 분명 머리는 세 번째 팔이 있다고 감각하는데 실제로는 세 번째 팔이 없는 거야. 얼마나 혼란스러움의 연속이겠어? 그러다 결국 로라는 세 번째 팔을 달기로 해. 뭐 남 보기에 이상해도 자신이 그렇게 결정한다면 누가 말리겠어. 하지만 내가 괜찮다고 다 괜찮지 않은 것들이 있지. 바로 애인 '진'과의 관계야. 진은 그런 로라를 이해하지 못해. 그냥 정신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 사실 이성적으로 너무 기괴한 일이잖아? 멀쩡한 두 팔이 있는데 거기다가 굳이 세 번째 팔을 달겠다니. 그런 로라를 보며 평생 살아가야 할 진의 마음을 생각해 봐. 진은 로라를 너무 사랑하지만, 그런 사랑하는 상대를 이해할 수 없음에 힘들어하고, 로라가 자신을 이해시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음에 힘들어하고, 또 변한 로라를 자신이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까 봐 두려워해. 이 둘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로라와 진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야. 사랑하지만 너무나도 다른 우리. 사랑하지만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우리. 사실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은 이 지구상에는 없어. 나조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타인에게 온전한 이해를 바라는 건 욕심이야. 하지만 이 넓은 세상에 나를 이해하는 게 달랑 나 혼자뿐이라는 사실은 좀 서글프잖아.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 사랑을 하며 하나가 되고 싶어 해. 너와 내가 일치되기를 바라. 내 생각이 너의 생각이기를, 내가 느끼는 걸 너도 느꼈기를 바라.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기를 원해.

  오늘 너는 내가 기피하는 대화 주제를 꺼냈고, 우리는 또 불편해지고 말았어. 너는 그저 대화였을 뿐이라고, 불편하지 않다고 했지만 나는 그랬어. 이 대화를 통해 우리가 다르다는 걸 증명받는 게 싫거든. 나도 너의 모든 부분에 공감하고, 너와 같이 느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걸 직면할 때 나는 무력해져. 나의 사소한 습관, 말투 행동은 너를 위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 그게 바뀐다고 해서 내가 없어지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가끔,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서 내가 나이게 만드는 것들을 포기해야 할 것 같을 때가 있어. 그러면 얼마나 슬퍼지는지.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결코 그것들을 포기하지 못할 테니까. 나는 내가 나이기를 포기할 수 없으니까.  로라가 결국 세 번째 팔을 단것처럼 말이야.


 로라와 진의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진은 이런 말을 해.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세 번째 팔'이 있어. 우리는 이 세 번째 팔을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 세 번째 팔을 이해받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물음에 이렇게 답하고 싶어. 이해할 수 없지만 끝내 사랑하게 되는 것이 있다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고. 우리는 앞으로도 많은 대화를 나누겠지. 또 많이 부딪히고, 서로의 다름을 발견해야만 할 거야. 서로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며 시작되었다가, 우리는 결국 다른 사람임을 깨닫는 게 연애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는 게 사랑이니까. 사랑은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허락하는 일인가 봐.

 

  나를 이해할 수 없어도 그저 바라보고 있어 줄래? 그러면 나는 나의 세 번째 팔로 너를 끌어안을게. 네가 상처받지 않도록 팔의 힘을 조절해 가면서 말이야.



*로라와 진의 이야기는 김초엽 작가님의 단편집 '방금 떠나온 세계'에 실려있는 '로라'라는 제목의 소설입니다. SF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사랑 이야기 사람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아마 하루도 못 가서 다 읽어버릴 거예요. 부디 한편한편 아껴 읽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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