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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찰나,

by 파rang 2023. 4. 3.

  봄이야. 햇볕이 따뜻하고, 바람이 차지 않고, 오래 걸어도 몸이 떨리지 않는 봄이야. 봄에는 벚꽃이 펴. 이번 봄에는 벚꽃을 자주 볼 수 있었어. 가는 곳마다 눈드는 곳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거든. 그런데 벚꽃은 너무 짧아. 1년을 기다린 벚꽃인데 기다림이 무색하게 아주 잠시 피었다가 이내 저버려. 안 그래도 짧은데 그사이에 비라도 오면 버티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져 버려. 왜 예쁜 건 늘 짧을까. 눈도 그렇잖아. 막 내려서 하얗고 예쁘게 쌓인 눈을 볼 수 있는 건 잠시뿐이잖아. 조금만 따뜻해져도 녹아버리잖아.

  난 예쁜 사랑이 하고 싶은데, 예쁜 것들이 좋은데 예쁜 게 잠시뿐이라면 또 예쁜 게 마냥 좋은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예쁜 건 좋지만 짧은 건 싫으니까. 나는 뭐든 오래오래가 좋으니까. 앞으로는 예쁜 사랑하세요 라는 말보다는 오래가는 사랑하세요 라는 말을 더 많이 해야겠다고 다짐해.

  그런데 벚꽃은 짧지만 다시 돌아와. 기다림은 길고 만남은 짧은 벚꽃이지만 반드시 돌아와. 그래서 우리는 벚꽃은 아주 잠시 피다 지고 만다는 걸 알면서도 그 잠시를 기다려. 그 잠시가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걸 아니까. 매년 보는 벚꽃이지만 매년 감탄하며 여기저기 셔터를 눌러대고 행복해할 나를 아니까.

  벚꽃은 예쁘고 예쁘지만 짧고, 짧지만 다시 돌아와. 오래가는 행복이 좋을지 매년 돌아오는 행복이 좋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올해의 벚꽃은 지고 있고 나는 또 내년의 벚꽃을 기다리겠지. 확실한 건 기다리면 반드시 돌아온다는 거야. 그게 벚꽃이든 행복이든.

  내일모래면 비가 온대. 그러면 벚꽃은 다 져버릴꺼야. 아직 벚꽃을 눈에 담지 못한 누군가가있다면 꼭 벚꽃을 보러 갔으면 좋겠어. 그러고는 예쁜 벚꽃을 보고 감탄하고, 조금 행복해하다가 또 내년 벚꽃을 기다려야지 하고 다짐하길 바래. 내년 벚꽃을 기다리며 벚꽃이
없는 계절들에도 잘 지내길 바래. 벚꽃이든 행복이든 반드시 돌아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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